이직을 결정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공유오피스? 거긴 이미 성장 멈췄잖아. 위워크도 망했는데 왜 가?”
부모님조차 반대하신 결정이었다. 쿠팡이라는 대기업을 두고, 왜 하필 지금, 이 시장으로 가느냐는 것이었다.
출근 첫날, 나는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패스트파이브가 창업 10년을 기념하며 펴낸 『벽을 깨다』(2025년 11월 발행). 부제는 ‘부동산 산업의 오래된 규칙을 다시 쓰는 패스트파이브의 여정’이었다. 입사 기념 선물이라기엔 묵직했다.
첫 장부터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남들이 ‘땅·입지·분양·건설’ 같은 하드웨어를 떠올릴 때, 우리는 ‘부동산 시장의 소프트웨어를 만든다’고. 그 한 문장에 이미 이 회사의 관점이 다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을 덮은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질문을 품게 됐다.
“주변의 걱정 대신, 나는 이 회사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
같은 시장, 정반대의 두 시선

책에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문장이 있다.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존재한다. 결국은 시선의 차이로 장단점이 나뉜다.”
누군가는 이렇게 본다. 공유오피스는 성장이 멈췄고, 위워크는 무너졌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본다. 국내 법인이 사무실에 쏟아붓는 임대료 시장만 100조 원, 서울의 오피스 총면적은 1,000만 평. 그런데 패스트파이브가 밟은 땅은 약 3만 평 — 딱 0.3%. 다시 말해, 99.7%가 통째로 비어 있는 시장.
세일즈를 오래 하면 시장을 볼 때 딱 하나를 먼저 본다. 점유율(share)이 아니라 침투율(penetration)이다.
성숙한 시장은 40%를 쥔 1위가 남은 5%를 놓고 피 흘리며 싸운다. 반면 침투율 0.3% 시장은 애초에 나눠 가질 파이를 다투는 게 아니다. 파이 자체를, 규칙 자체를 처음 그리는 싸움이다. 영업 현장의 진실도 똑같다. 오래된 질문의 다섯 번째 답이 되는 것보다, 새로운 질문의 첫 번째 답이 되는 게 압도적으로 쉽다. 나는 그 ‘첫 번째 답’이 만들어지는 자리에 서고 싶었다.
그리고 이 시선이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는 걸, 세계 시장이 이미 증명하고 있었다.
“공유오피스는 끝났다”는 착각
찾아보니, 세계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 글로벌 플렉시블 오피스 시장은 2025년 약 452억 달러에서 2034년 약 1,950억 달러로, 10년간 4배 이상 성장이 전망된다.
- JLL은 2030년까지 전 세계 오피스의 30%가 플렉시블 형태로 전환될 것이라 내다본다. 지금은 3% 수준이니, 10배가 남았다는 뜻이다.
- CBRE 조사에서 기업들의 플렉시블 공간 배분 비중은 1년 만에 12%에서 21%로 뛰었다.
여기서 진짜 인사이트는 숫자가 아니라 수요의 성격이다. 과거 공유오피스는 ‘돈 없는 스타트업이 잠깐 쓰는 곳’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에서 신규 플렉시블 계약의 40% 이상이 대기업에서 나온다. 비용 절감 수단이었던 유연성이, 대기업의 ‘전략’이 됐다는 뜻이다. 재택과 하이브리드가 되돌릴 수 없는 표준이 되면서, 유연성에 대한 수요는 유행이 아니라 구조가 됐다. 바닥이 사라진 게 아니라, 바닥이 올라오고 있다.
그렇다면 위워크는 왜 무너졌나. 여기서 오해를 풀어야 한다. 위워크의 실패는 ‘공유오피스의 실패’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실패’였다. 10년짜리 장기 임대(고정 비용)를 지고, 한 달이면 빠져나가는 단기 매출(변동 수익)에 얹은 뒤, 그걸 ‘부동산’이 아니라 ‘테크’라고 불렀다. 자산과 부채의 만기가 어긋난 회사는 호황엔 화려하지만 불황엔 가장 먼저 부러진다.
흥미롭게도 『벽을 깨다』 역시 위워크의 몰락을 똑같이 짚는다. 코로나19는 부차적이었을 뿐, “무리한 사업 확장과 이로 인해 불안정해진 재무 구조가 결정타”였고, “핵심이 빠진 상태에서 외형만 키우는 데 급급했던 탓”이라고. 세일즈 현장에서 다진 내 직관과 책의 진단이 정확히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반대로 세계 1위 IWG(Regus·Spaces)는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 4,500개 거점을 운영하며 ‘직접 임대’에서 ‘운영·관리 서비스’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관리·프랜차이즈 모델이 이미 포트폴리오의 3분의 1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Industrious는 오히려 성장해 글로벌 부동산 기업 CBRE에 인수됐다.
즉, 진짜 흐름은 이것이다. 부실한 모델이 정리되고, 시장은 ‘공간을 빌려주는 사업’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한 종합 서비스 사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전환의 가장 빠른 성장 지역이 바로 아시아·태평양 — 우리가 서 있는 자리다.
우리는 ‘공유오피스’를 팔지 않는다

사실 이 회사의 시작부터가 ‘공간’이 아니었다. 김대일 대표는 미팅마다 스타벅스를 찾으며 이런 질문을 품었다고 한다. “스타벅스에선 아이디어가 술술 나오는데, 왜 사무실만 들어가면 잘 안 될까?” 한 소설가가 “한국의 카페는 초단기 부동산 임대업”이라 표현한 바로 그 지점에서, 패스트파이브는 태어났다. 처음부터 이들이 판 것은 공간이 아니라 일하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이 뛴 대목은 이것이었다.
패스트파이브는 스스로를 더 이상 ‘공유오피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피스 부동산 종합 서비스’,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만든다고 말한다. 사옥 구축, 오피스 인테리어(하이픈디자인), IT 솔루션(파이브클라우드), 세무·법무·HR까지 — 일하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으로 확장하고 있다.
세일즈의 눈으로 보면, 이건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다. 가장 정교한 형태의 랜드 앤 익스팬드(land & expand) 전략이다.
하나의 상품은 언제나 가격으로 비교당하고, 결국 싸구려 경쟁으로 끝난다. 하지만 오피스를 ‘입구’로 삼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회사의 본사를 품는 순간, 그 회사의 인테리어·IT·세무·인사까지 이미 신뢰가 깔린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제안할 수 있다. 신규 고객을 얻는 비용은 0에 가깝고, 고객 한 명의 평생 가치(LTV)는 계속 커진다. 게다가 서비스가 겹겹이 쌓일수록 고객은 쉽게 떠나지 못한다. 이것이 B2B 사업이 복리로 굴러가는 원리이고, 내가 14년간 현장에서 몸으로 배운 게임의 룰이다. 패스트파이브는 정확히 그 룰대로 두고 있었다.
책은 이 확장을 “공간의 맥락에서 일하는 맥락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라 표현한다. 임차인향(向) 공간 비즈니스에서 시작해 건물주향 금융 비즈니스로까지 나아간다고. 그리고 이건 구호가 아니라 이미 숫자다 — IT 솔루션 파이브클라우드는 2024년 연매출 100억을 돌파했고, 인테리어 하이픈디자인은 2025년 상반기에만 76억(전년 대비 +106%)을 찍었다. 사옥 구축 서비스 ‘파워드바이패파’는 론칭 1년 만에 고객사 20곳, 구축 면적 6,350평을 넘겼다.
그래서 박지웅 의장은 “패스트파이브의 현재 위치가 어디쯤이냐”는 질문에, 딱 한마디로 답한다.
“0.3%.”
서울 오피스 천만 평 중 이제 겨우 3만 평. 그 3만 평이 지금까지 밟은 땅의 전부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커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설렜다.
세상에 없는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 — 나는 이 문장 앞에서 15년 전을 떠올렸다.
한샘 리하우스, 그리고 다시 만난 ‘새로운 기준’

한샘에 다닐 때, 우리는 ‘한샘리하우스’를 두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주거와 관련된 A부터 Z까지 한 번에. 당시 대기업 브랜드사들은 특판 시장에만 앉아 있었고, 소비자를 향해 통합 리모델링을 제안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현대리바트도, LX하우시스도, 오늘의집도 모두 그 모델을 따라 한다. 한때 ‘없던 서비스’가 지금은 산업의 표준(기준)이 됐다.
여기서 나는 하나의 패턴을 배웠다. 시장을 이기는 법은 ‘더 나은 X’가 되는 게 아니라, 경쟁자들이 결국 내 방식대로 따라올 수밖에 없도록 카테고리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한샘리하우스는 ‘더 좋은 가구’를 판 게 아니라 ‘집 고치는 방식’ 자체를 바꿨다. 그리고 지금 패스트파이브는 ‘더 좋은 사무실’이 아니라 ‘회사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중이다. 규칙을 만드는 자는 늘 소수이고, 나머지는 그 규칙을 따라간다.
나는 그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지는 한복판에 있었고, 그 성장 속에서 함께 커졌다. 그리고 지금, 패스트파이브에서 똑같은 종류의 설렘을 다시 만났다. 공유오피스가 아니라 오피스 부동산 종합 서비스라는, 아직 아무도 표준으로 만들지 못한 그 자리.
그래서, 나는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

입사한 지 이제 겨우 일주일. 그런데 벌써 이 회사를 좋아하게 됐다. 아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벽을 깨다』가 담은 10년의 여정을 다 이해하기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 여정 위에,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 위에 함께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책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핵심 논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패스트파이브의 성장은 중개 비즈니스를 해체하며 이루어냈다.” 중개는 결국 정보의 비대칭에서 태어나고, 패스트파이브는 그 구조 자체를 뜯어고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창업 초기에 김대일 대표가 발견한 건 ‘오피스 부동산엔 마켓프라이스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 임대인의 마음이 곧 가격인 시장. 그는 이 비대칭을 ‘뒤집어 기회로 만들고자 했다.’
곱씹을수록 이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의 정의다. 오피스 임대 시장은 아직도 브로커의 전화 몇 통과 감(感)으로 굴러가는, 몇 안 남은 아날로그 시장이다. 누가 성장하고 있고, 누가 언제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지 — 그 수요 데이터를 쌓는 쪽이 결국 시장을 연결하는 판(platform)을 갖는다. 비대칭은 없애야 할 문제이자, 동시에 가장 큰 해자(moat)다.
그리고 그 비대칭을 허무는 일 — 고객이 말하지 않은 진짜 문제까지 파고들었던 14년의 세일즈가, 여기서 쓰일 자리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왜 거길 가?”라고 물었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남들이 벽이라 부르는 그 자리가, 사실은 문이었다는 것을.
책의 마지막 문장도 오래 남았다. 부동산(不動産)은 움직일 수 없는 재산이라 늘 소유자에게만 힘이 실려 왔지만, 패스트파이브는 그 부동(不動)의 가치를 서서히 이동시키고 있다고. 그리고 이제는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차례라고. 나는 그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생각했다.
오피스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건, 오직 우리뿐이다.
자주 묻는 질문 (FAQ)
공유오피스 시장은 정말 성장이 멈췄나요?
아닙니다. 글로벌 플렉시블 오피스 시장은 2025년 약 452억 달러에서 2034년 약 1,950억 달러로 4배 이상 성장이 전망됩니다. JLL은 2030년까지 전 세계 오피스의 30%가 플렉시블로 전환될 것으로 봅니다. 위워크의 실패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개별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실패였습니다.
위워크는 왜 실패했나요?
10년짜리 장기 임대(고정비)를 지고 단기·변동 매출에 얹은 재무구조 불일치가 핵심입니다. 책 벽을 깨다도 무리한 사업 확장과 불안정해진 재무 구조가 결정타였다고 진단합니다. 반면 세계 1위 IWG는 운영·관리 모델로 전환해 성장하고 있습니다.
패스트파이브는 왜 스스로를 공유오피스가 아니라고 하나요?
사옥 구축, 인테리어(하이픈디자인), IT(파이브클라우드), 라운지 멤버십까지 일하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으로 확장하는 오피스 부동산 종합 서비스이기 때문입니다. 파이브클라우드는 2024년 연매출 100억을 돌파했습니다.
벽을 깨다는 어떤 책인가요?
패스트파이브가 창업 10년을 맞아 2025년 11월 펴낸 책으로, 부제는 부동산 산업의 오래된 규칙을 다시 쓰는 패스트파이브의 여정입니다. 공유오피스 1호점부터 코로나, 신사업 확장, 미래 비전까지의 10년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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