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에 다닐 때 저는 워크숍의 꽃이었습니다. 팀 대항 운동경기가 열리면 누구보다 먼저 불타올랐고, 우리 팀이 이겨야 하니까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작전을 짜고 몸을 던졌습니다. 누가 봐도 완벽한 인싸였고, 그 순간의 저는 진심으로 신나 있었습니다.

문제는 경기가 끝난 뒤였습니다. 다 같이 모여 밥 먹고 술 한잔하는 자리. 우리 팀끼리 있을 땐 괜찮은데, 옆 테이블의 다른 팀 사람들이 슬슬 넘어와 섞이기 시작하면 그렇게 어색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에너지가 쭉쭉 빠져나갔습니다. 방금까지 펄펄 날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요.
놀라운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겁니다. 겉으론 여전히 웃고 떠들었으니까요. 저만 알았습니다. 몸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마음은 문밖에서 그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는 걸. 혹시 당신도 그런가요. 조직에서 인정도 받고 분위기도 잘 맞추는데, 이상하게 ‘우리’라는 덩어리가 커질수록 겉도는 기분이 든다면, 오늘 글은 당신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한 줄 답변. 회식이 어색한 것은 사회성의 결함이 아니라 연결 방식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 라미 카민스키는 이런 유형을 이향인(otrovert)이라고 부릅니다. 집단에 소속되는 감각(소속감)은 필요로 하지 않지만, 한 사람과 통하는 감각(유대감)은 누구보다 깊은 사람입니다. 저는 책 뒤편 자가진단 테스트에서 194점이 나왔고, 14년 넘게 결함이라 믿고 숨겨 온 기질이 사실은 리더의 무기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누가 봐도 인싸였는데, 저만 알고 있었습니다

제 이력만 보면 저는 완벽한 ‘조직형 인간’입니다.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한샘리하우스에서 남자들만 하던 대리점 관리자 자리를 거쳐 팀장까지 올랐습니다. 부딪히고 깨지며 사람을 모으고 팀을 이끌어 온 시간이 곧 저였습니다. 그러니 워크숍에서 그렇게 불타오르는 저를 보며, 저조차도 저를 당연히 외향인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에너지가 빠지는 순간’들을 오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팀장이 되고부터는 자책까지 얹혔습니다. 팀에 정을 붙이려 회식도 열심히 잡고 워크숍도 앞장서 기획하는데, 정작 저한테는 그 ‘소속감’이라는 게 잘 생기질 않았거든요.

팀원은 진심으로 아끼는데 ‘팀’이라는 덩어리엔 녹아들지 못하는 느낌. 저를 위해 뭉쳐 준 자리에서조차 한 발 떨어져 관찰자로 서 있었습니다. 리더가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정 없는 사람인가. 이 기질을 오래 결함으로 여기고 꽁꽁 숨겼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 알고 보니 저는 ‘이향인’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라미 카민스키의 『이향인』을 집어 들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세상을 외향인과 내향인으로만 나누던 낡은 틀을 깨고, 제3의 유형인 이향인(otrovert)을 꺼냅니다. 어원부터 스페인어 otro(다른)와 vert(방향)입니다. 무리와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이향인은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어떤 집단에 속하더라도 ‘소속감’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회식이 어색한 건 반사회적이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우리’라는 감각으로 안정감을 얻는 구조가 아니어서라는 것입니다.
흔히 내향인은 혼자 있을 때, 외향인은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채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향인은 아예 축이 다릅니다.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이라는 감각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향인은 저처럼 겉으론 완벽한 인싸로 보일 수도, 반대로 조용한 아싸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 어느 쪽에도 ‘우리’로 묶이지 않은 채로요.

책 맨 뒤에 자가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188점 이상이면 이향인이라는데, ‘설마 내가?’ 하며 반신반의로 풀었습니다. 문항을 넘길수록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집단의 규칙보다 내 기준을 더 믿는지, 큰 모임 뒤엔 유독 진이 빠지는지. 그런 질문들이 제 14년을 대신 읽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결과는 194점. 14년 넘게 저를 조용히 괴롭히던 그 ‘붕 뜬 느낌’의 정체가 딱 한 단어로 정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고장 난 외향인이 아니라 그냥 이향인이었습니다. 결함이 아니라 유형이었다는 그 한 문장에,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소속감이 없는 게 아니라, 소속감 없이도 연결되는 사람
이 책이 저를 가장 세게 흔든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소속감(belonging)과 유대감(connection)을 칼같이 갈라놓는 대목입니다. 소속감은 ‘우리’라는 집단에 녹아드는 느낌이고, 유대감은 사람 한 명과 진짜로 통하는 일대일의 연결입니다. 저자는 이 둘이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췄습니다. 그제야 워크숍의 그 장면이 이해됐습니다. 우리 팀일 땐 펄펄 날다가 다른 팀이 섞여 ‘우리’가 커지는 순간 에너지가 빠진 건, 제가 집단이 아니라 사람에 연결되는 사람이라서였습니다. 회식이라는 ‘덩어리’엔 겉돌았지만, 팀원 한 명 한 명과는 누구보다 깊게 연결돼 있었습니다.
제 커리어의 진짜 장면들은 전부 ‘집단’이 아니라 ‘한 사람’과의 순간이었습니다. 힘들어하는 팀원과 밤늦게 나눈 대화, 퇴사를 고민하던 후배와의 티타임, 계약서 너머의 고객과 눈 맞추던 순간. 돌이켜보면 저를 성장시킨 건 소속된 조직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정확히는 한 명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조직에 ‘속한’ 게 아니라, 조직 안에서 ‘나로서’ 일하며 사람과 한 명씩 연결돼 온 것이었습니다. 소속감이 없는 건 결함이 아니라, 그저 제 연결 방식이 달랐을 뿐입니다.
약점인 줄 알고 숨겼던 게, 사실은 리더의 무기였습니다
카민스키는 이향인의 특징을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읽습니다. 집단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지 않으니 모두가 “예스”를 외칠 때 혼자 “잠깐요”를 말할 수 있습니다. 무리의 눈치가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를 경청으로 공감합니다. 남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니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 회의실 공기에 휘둘리지 않는 힘 — 분위기가 아니라 숫자와 사실로 판단합니다.
- 팀원을 집단이 아니라 개인으로 보는 눈 — ‘우리 팀’이 아니라 ‘이 사람’이 먼저 보입니다.
- 내 판단을 남 눈치로 흐리지 않는 기준 — 인정받기 위해 결정을 바꾸지 않습니다.
읽다 보니 이건 딱 리더에게 필요한 근육이었습니다. 실제로 다들 “된다”고 밀어붙일 때 저 혼자 “이건 숫자가 안 맞습니다”라며 속도를 늦춘 적이 여러 번입니다. 그때마다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아 눈치가 보였지만, 지나고 보면 그 한마디들이 팀을 지켜 냈습니다. 결함이라 믿고 숨기던 기질이, 사실은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리더십을 이렇게 바꿨습니다
1. ‘소속감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놨습니다
팀 전체를 하나로 녹이려 억지 이벤트를 쥐어짜는 대신, 팀원 각자와의 연결에 에너지를 몰아줬습니다. 이번에 새 조직으로 옮겼을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이 그룹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보다 조직원 한 명 한 명의 커리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일즈는 지금 인센티브를 제대로 받아 내야 다음에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룹의 성과판보다 각자의 성장판을 먼저 챙깁니다. 덩어리가 아니라 사람.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니 팀이 오히려 더 단단해졌습니다.
2. 1on1을 회식보다 위에 뒀습니다
단체 자리에서 겉돌던 에너지를, 한 명과 마주 앉아 그 사람의 언어로 듣는 데 쏟았습니다. 이향인의 진짜 무기인 경청은 일대일에서 폭발합니다. “요즘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뭐예요?” 이 한 문장이 회식 열 번보다 힘이 셌습니다.

3. 팀 안의 ‘조용한 이향인’을 색안경 없이 보기로 했습니다
회식에서 슬며시 빠지고 워크숍에서 겉도는 조용한 에이스를 “왜 안 어울려?”로 몰지 않습니다. 억지로 무리에 끼워 넣는 대신, 그 사람이 가장 빛나는 일대일의 판을 깔아 줍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소속감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걸, 제가 저를 통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그 조용한 에이스가 바로 저였을 테니까요.
오늘의 한 줄
하나. 소속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소속감 없이도 사람과 깊이 연결되는 유형이 있습니다.
둘. 소속감(집단)과 유대감(개인)은 다릅니다. 저는 덩어리엔 겉돌아도 사람에겐 진심이었습니다.
셋. 결함이라 믿고 숨겼던 기질이, 알고 보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무기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이향인(otrovert)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정신과 의사 라미 카민스키가 제시한 제3의 성격 유형입니다. 스페인어 otro(다른)와 vert(방향)가 어원으로, 무리와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사회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단에 속하더라도 ‘소속감’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유형을 말합니다.
이향인과 내향인은 어떻게 다른가요?
내향인과 외향인은 ‘에너지를 어디서 충전하느냐(혼자냐, 사람들 속이냐)’로 나뉘지만, 이향인은 축 자체가 다릅니다.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이라는 감각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향인은 겉으로는 완벽한 인싸로 보일 수도 있고 조용한 아싸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향인 테스트는 몇 점부터 이향인인가요?
라미 카민스키의 책 『이향인』 맨 뒤에 실린 자가진단 테스트에서 188점 이상이면 이향인으로 봅니다. 저는 194점이 나왔습니다. 다만 점수는 낙인이 아니라 자기 이해의 출발점으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회식이 어색한 팀장은 리더로서 문제가 있는 걸까요?
아닙니다. 소속감(집단에 녹아드는 감각)과 유대감(한 사람과 통하는 일대일의 연결)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단체 자리에서 겉돌아도 팀원 한 명 한 명과 깊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집단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기질은 오히려 모두가 ‘예스’일 때 ‘잠깐요’를 말할 수 있는 리더의 무기가 됩니다.
팀에 조용한 이향인 팀원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억지로 무리에 끼워 넣는 대신, 그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일대일의 판을 깔아 주세요. 회식 참석률로 팀워크를 평가하지 말고 1on1의 밀도로 보는 편이 낫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속감이 아니라 연결입니다.
답글 남기기